몸이 아니라고 말할때
주변에 3040 지인들이 암에 걸리는 일이 많아졌다. 내 사촌동생은 30대의 나이에 폐암으로 지난 겨울 세상을 떴다. 풍족한 먹을것과 발달한 의학기술이 있는데도 젊은 사람들이 암에 걸린다. 최근에는 30대 직장동료가 암에 걸려 휴직을 했다. 아는 사람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더니 책 한권을 추천해줬다.
이 책의 많은 문장들이 감정을 억누르는 패턴들이 질병을 야기시킨다고 한다. 비폭력대화에서는 감정은 우리 욕구가 채워졌는지 그렇기 않은지에 대한 신호라고 한다. 즉, 신체가 보내는 중요한 신호인데 우리는 그것을 돌아볼 여유가 없이 살아왔다. 그 이유로 급격한 산업화와 전쟁의 흔적때문이라고 본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가 이 과정을 겪었다. 개인의 감정을 돌보기엔 너무 여유없이 세상을 발전시키기에 바쁜 시간을 보냈다. 전쟁후에는 폭력적인 소통방식만이 세상에 존재했다. 그 방식은 그대로 가정으로 들어왔다, 가정은 그저 산업화 세상에 걸맞는 아이를 키우는데만 몰입되어 있었다. 그런 과정으로 공부나 성취만 강요한다던지, 정서적인 안정이나 감정의 돌봄은 사치라고 여기는 경향들이 너무나도 만연되어 있었다. 이런 현상은 어느 한군데에만 해당되는게 아니었다.
놀라운건 선진국이라 생각되는 나라, 즉 서양에서도 이런 가정들이 많았다는것이다. 그 부작용으로 열심히 살다가 암이나 근육 다발성 경화증같은 심각한 질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불안과 불신의 결과인 전쟁은 수십년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정을 억압하는 습관을 만들어놓은듯 하다.
하지만, 다행인건 점차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것이다. 오히려 암 같은 심각한 질병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 친구들도 있다. 너무 쉼없이 앞만보고 달려오며 놓친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시간은 사실상 이런 질병이 올때만 가능한것 같다. 현대인의 비극이기도 하다.
이 책에선 작은 질병도 몸이 힘들다는 표현의 방식이라고 하다. 역류성 식도염, 궤양 등이 일례다. 나도 정신적으로 힘들었을때 궤양을 심하게 앓았다. 내과 의사 선생님이 내 질병을 진단하며 "그냥 맘편히 살아요. 스트레스 받지 말고."라는 말만 했는데 눈물이 줄줄 흐를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요즘 감정표현하는것도 배우고, 영어스피치 하며 뒤끝없이 바로 표현하는것을 배우며 궤양도 많이 좋아졌다.
건강한 감정 표출은 그 자체가 스트레스를 감소시킨다.
풍부한 감정이 넘쳐났던 수녀들의 자전기록과 훗날 그들이 치매에 걸리지 않은 것의 상관관계는 놀라운 일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긍정적인 사고는 우리에게 진실에서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힘을 부여한다.
분자연구학자 캔디스 퍼트는 “건강은 그저 행복한 생각들만 하는 문제가 아니다.”고 적고 있다. “가끔은 오랫동안 억눌려온 화를 폭발시켜 면역계를 점프-스타트하는 데서 치유를 향한 가장 강력한 추진력이 발생할 수도 있다.”
당신의 에너지의 너무 많은 부분이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데 쓰였습니다. 그리고 그나마 남은 에너지의 너무 많은 부분이 자기비판에 쓰였습니다. 그렇게 자신에게 가혹하게 굴면 많은 에너지를 뺏깁니다.
위 문장들을 보면 말이나 글 혹은 분노로 감정을 있는그대로 표현하는것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치매예방에도 좋은지 알게 된다. 돌아보면 부정적인 감정들이 쉽게 쌓일수 밖에 없는 구조도 내 안에 감정을 가둬놓고 표현하지 않을때이다. 또는, 세상의 조건에 맞추지 못하면 쉽게 자기비판을 할때이다. 이러면 부정적인 감정의 발전소를 내안에서 돌리는것이나 상관없다. 될수 있는한 나를 있는그대로 받아들이고 세상에 요구하는것 좀 못해도 나를 격려하면서 살 필요가 있다. 힘든게 있으면 그때그때 표현하는것도 중요하다.
무기력한 아기든 무기력한 환자든 죽어가는 어른이든 그 어떤 인간도 쓸모없는 인간은 없다.내가 쓸모있다고 증명할 필요가 왜 있는가
나의 가치는 다른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있지 않다. 존재만으로 가치있다.
우리는 어린 나이에 자신의 가치는 다른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있다고 배운다. 생애 초반부터 가슴속에 새겨지는 이 메세지가 과하게 강조된다. 사람들은 너무 자주 자신의 가치가 공리적인 기여에 의해서만 평가받는다고 믿으며, 만약 자신의 경제적 가치가 상실되면 희생될수도 있다고 느낀다.
아동기의 환경이 미친 영향이 만성 스트레스가 되면 세상은 안전하지 못하고 심지어 적대적인 곳이라는 메세지를 반복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지각된 내용은 분자수준에서 우리의 세포 속에 프로그램된다.
우리가 감정의 억압 패턴을 쌓은 이유로 이 책은 끊임없이 자신의 쓸모 있음을 증명해내야 하는 사회구조를 꼽고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우리자신을 존중하는법을 배우지 않고 이 사회에 나온다. 그저 사회가 요구한것을 따라가지 못하면 뒤쳐지는 루저같은 느낌을 받을 뿐이다. 그것도 어느정도는 할수 있는데, 한계가 오면 불가능하다. 그럴때 우리는 휴식을 취하지 못한다. 루저가 될것 같은 두려움때문에. 하지만, 이 책에선 당신의 가치는 증명해야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존재자체로 당신은 가치가 있다. 힘들다면 쉴 권리가 당연히 있다.
연결을 추구하는 일은 치유의 필수 사항이다.
업무나 생활에서 더 큰 지배력을 발휘하는 사람일수록 더 나은 건강을 누린다.
질병이나 힘든게 있을때 감정을 억압해온 사람은 더더욱 자신을 감춘다. 심하면 주변사람에게 자신의 발병을 알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큰 병일수록 소문을 내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알수록 많은 사람과 그 병을 나눌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힘들수록 부정적인 감정을 너무 감출필요 없다. 연결하고 나누다 보면 우리의 감정은 빠져 나간다.
결국 이 책에서는 삶의 주체성을 많이 가질수록 건강한 삶을 살수 있다고 한다. 결국 내가 원하는것을 확실히 알고, 남에게 덜 휘둘리고, 남에게서 자신을 보호할수 있다면 그런 마음들이 나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한다.
주변을 보면 사실 이런 주체성을 가진 사람을 많이 보지 못한다. 아시아인의 특성인지 너무 남의 눈치를 보고, 남의 말에 잘 휘둘리며, 남의 말도 많이 하며 산다. 나도 그런 패턴을 많이 가졌고, 지금도 있지만, 남에게 촛점이 가 있을수록 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나를 잃어버려 자신에 대한 케어와 보호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몸은 질병으로 내가 힘들다고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어느 책에선 질병은 몸의 대화법이라고도 한다. 몸이 아플때 우리는 어떻게 몸을 대하고 있는가? 일이 바쁘고 상황이 안 좋으니 몸은 나중에라고 경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몸이 뭐라고 말하는지를 들어보는 귀를 가져야하지 않을까? 남이 말하는것을 듣는것은 너무 많이 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