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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비가 된 엄마
    동화와 동시 2014. 7. 12. 17:41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Death is of vital importance.]의
    Lorrie라는 글을 동화화 한 글입니다.
    로스 박사님은 이 책에서 아이들과 호스피스란 주제로
    여러편의 이야기를 남기셨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아이들에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것은
    터부시 된터라 이 부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해보고 싶었지요.

    이 글을 쓰기전,
    어릴때 부모님을 잃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어릴때 겪은 상실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마무리되어야하며,
    그렇지 못하면 인생전반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게되었습니다.
    귀중한 이야기를 들려준 친구들에게 감사의 인사 보냅니다.


    나비가 된 엄마

     


    오늘도 동생과 싸웠어요. 기집애, 자기 색연필 좀 쓴다고 짜증을 내요. 난 일학년이고, 지는 유치원 다니면서. 언니 숙제 좀 한다는데 몇 개 주면 어때서. 이럴 때 엄마가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셨는데. 세리가 울 때 엄마가 안아주고 쿠키를 주시면 뚝 그쳤는데. 세리는 신경질나게 계속 울기만 해요.

    엄마는 어딜 가셨을까요? 엄마 안 본지 꽤 오래됐어요. 손가락으로 꼽아보다 며칠이 지났는지 잊어버렸어요. 엄마방 화장대 화장품도 그대로고, 옷장 옷도 그대론대. 어디로 가셨을까요? 고모가 와서 밥을 주시고 있지만, 고모는 무서워요. 식탁에서 항상 예절을 지키라고 뭐라 하세요. 엄마랑 학교에서 일어난 이야기하고, 내가 잘 먹는 음식은 더 담아주셨는데. 고모는 무서워서 이야기 못하겠어요. 항상 바로 앉아 흘리지 않고 먹으라고 하세요. 고모밥 맛없어요.

    학교수업도 재미없어요. 숙제도 항상 다 못해가요. 숙제 칭찬 받아가도 칭찬해줄 엄마가 없는걸요. 어려운 숙제가 나오면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요즘은 모든 숙제가 다 어려워요. 뜀뛰기 하는 친구들은 무슨 힘이 나오는지. 난 항상 힘이 없어요. 피곤해요.
    오늘 체육시간에 줄넘기를 했는데, 열 개도 못 채우고 그만 뒀어요. 선생님이 좀 더 해보라고, 넌 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옛날 기운이 안 나왔어요. 도데체 엄마는 어디 계신걸까요?

    밤에 잠을 자다 깼어요.
    화장실에 갔다 오는데, 아빠랑 고모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로리 엄마는 어때?”
    “뭐, 그대로죠.”
    “의사는 뭐라 그래?”
    “다리는 괜찮은데, 의식이 없어서 움직이질 못한대요. 이대로 침대에서 있다가 갈거 같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 그러네요.”
    “에휴, 저 어린것들을 두고 어떻게 가니?”
    “그 사람은... 천국에 갈거에요. 저 내일도 일찍 가봐야할 것 같아요.”
    “매일 그렇게 다녀도 되겠어? 피곤하지 않아?”
    “제가 가고 싶어서 가는건대요. 어서 주무세요. 밤이 늦었어요.”

    엄마가 천국에 가?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거지? 그렇구나.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계신거구나.

    다음날 아침 먹을 때 고모에게 물어봤어요.

    “고모, 엄마 어디있어요?”
    “멀리 여행갔어.”
    “엄마 병원에 있어요?”

    그 말을 듣자, 고모는 날 쳐다보지 못했어요.

    “아니야, 여행갔어. 멀리 가서 시간이 걸리는거야.”
    “아닌 것 같은데...”
    “넌 고모가 그렇다면 그런줄 알아야지. 쪼그만게 어디서 의심을 해? 어서 아침 먹고 학교가.”

    고모는 너무 무서워요. 무슨 말을 못하겠어요. 고모 앞에 서면 입이 얼어붙어요. 아무 말도 하기 싫어요. 학교에서도 말하기 싫어요.친구들도 귀찮고. 동생 세리는 엄마가 없으니 나한테만 칭얼대고.

    산수시간이었어요. 내 짝꿍 존이 장난을 치다 야단을 맞았어요. 선생님께서 화를 내자 교실이 조용해졌어요.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선생님한테 말하는게 겁났어요. 좀만 더 참으면 쉬는시간이지. 그때 갔다오자. 참고, 참고 또 참았어요. 쉬는시간 종이 땡땡 치자, 그만...

    “어, 너 오줌쌌어? 선생님, 로리 오줌 쌌대요.”

    존이 창피하게 먼저 이야길 했어요. 눈물이 왈칵 나왔어요. 책상에 엎으려 엉엉 울었어요. 브라운 선생님이 다가왔어요. 나를 양호실로 데려갔어요.

    “어머, 얘 로리 아니에요?”
    “선생님, 여벌 옷 있어요?”
    “속옷하고 스타킹, 치마는 있어요. 이런 흠뻑 젖었네.”

    미세스 브라운 선생님은 조용히 옷을 갈아 입혀주셨어요. 엄마 생각이 났어요. 엄마는 딸기무늬 팬티를 사다주셨는데. 레이스가 달린 스타킹을 신기면서 우리딸 다리 길다고 칭찬해주셨는데. 엄마생각을 하니 갑자기 눈물이 났어요.

    “로리, 왜 울어?”

    미세스 브라운 선생님이 친절하게 물어봐주셨지만, 대답하기 싫었어요. 어른들은 다 미워. 고모도 아빠도 엄마가 어딨는지 말도 안해주고.

    “학기초엔 모범생이었는데, 요즘엔 왜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다. 숙제도 잘 안해오고, 체육시간에도 풀이 죽어있고. 무슨 일 있니?”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선생님은 한숨만 쉬셨어요.

    “로리야, 괜찮아. 살다보면 실수할 수도 있지. 이 옷은 세탁해서 보낼게. 오늘은 낯빛도 안 좋고 어디 아픈가 보다. 여기서 한숨자고 있어. 선생님이 수업 끝나고 데리러 올게.”

    간만에 푹 잤어요. 꿈속에서 엄마가 나왔어요. 엄마랑 공원을 산책하는 꿈. 네잎클로버를 따고, 벤치에 앉아 호수에 있는 오리 구경을 했는데. 잠에서 깨니 양호실이었어요. 뚱뚱한 아담스선생님이 책상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계셨어요. 엄마는 없네.


    다음날, 학교에 가니 미세스 브라운 선생님이 나를 불렀어요.

    “로리야, 선생님이랑 갈데가 있어.”
    “어딜요?”
    “요즘 로리가 마음이 아픈 것 같아. 예전에는 잘하던 것들을 잘 못하고, 항상 풀이 죽어있고. 선생님이 로리의 마음을 고쳐줄 의사 선생님께 데리고 가 줄게.”
    “의사요?”
    “응. 닥터 로스라고 아주 인자하신 분이 계셔. 고모님이랑 아버지한테 허락도 얻었어. 우리 세 밤만 자고 닥터 로스네 가자. 선생님이 계속 같이 있을테니까 괜찮을거야.”
    “닥터 로스? 그럼 병원에 가는건가요?”
    “아니, 그냥 집. 닥터 로스는 병원에 살지 않아.”
    “의사가 병원에 없어요?”
    “응, 집에서 아이들을 만나신대. 편안히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이 어떤가 봐야 하거든.”

    세 밤이 지나고, 세리랑 같이 선생님 차에 탔어요. 닥터 로스는 아주 큰 집에 혼자 살고 계셨어요. 방도 여러개고. 이 정도 집이라면 할머니, 할아버지랑 사촌 짐하고도 같이 살수 있는걸? 고모는 항상 집이 작으니 뛰어다니지 말라 하는데, 여긴 아주 큰 거실이 있었어요. 닥터 로스는 하얀 가운을 입지 않았어요. 대신 머리는 하얀색이었어요.

    “안녕, 얘들아. 너희들이 로리와 세리구나. 니가 로리지?”
    “어, 어떻게 아셨어요?”
    “다 아는 수가 있지.”

    닥터 로스는 안경너머로 눈웃음을 지으셨어요. 굉장히 키가 크셨어요. 하지만, 우리랑 이야기할때는 무릎을 꿇고 키를 우리만하게 만들었어요.

    “자, 여기 테이블에 앉거라. 여기 옆에 선생님이 불을 떼어놨어. 아주 따뜻할거야. 몸 좀 녹이면서 있어봐.”

    닥터 로스는 주방으로 가서 덜그럭 소리를 내더니, 내가 좋아하는 도넛과 콜라를 갖다 주셨어요. 그것도 초콜렛 입힌 도넛과 딸기맛이 나는 도넛. 고모는 이가 썩는다고 한번도 도넛을 사준적이 없었어요. 세리와 나는 오랜만에 만난 도넛이 반가웠어요.

    “콜라도 다 마시면 더 줄게. 천천히 먹거라.”
    “언니, 내가 딸기맛 먹을래!”
    “오호, 꼬마아가씨 딸기맛 좋아하시네. 로리는 초콜렛 도넛 먹어도 괜찮겠니?”
    “네, 괜찮아요.”

    콜라와 도넛을 한참 먹었어요. 탁탁 소리를 내는 난롯가 옆에서 먹는 달콤한 도넛. 입안에서 저절로 녹았어요.

    “하나 더 먹어도 되요?”

    세리, 저 기집애 부끄럼도 없어.

    “오호, 딸기 공주님. 그러세요. 로리, 너도 더 줄까?”
    “아니에요.”

    우리가 한참 도넛을 먹고 나자, 닥터 로스가 크레용과 스케치북을 가지고 왔어요.

    “얘들아, 우리 그림 한번 그려보자. 아무것이라도 좋아. 니네가 그리고 싶은거 한번 그려볼래? 선생님이 색깔이 사십팔개나 되는 크레용을 샀거든. 짜쟌, 예쁘지? 우리 아가씨들이 이걸로 어떤 예쁜 그림을 그리나 볼까?”
    “나 공주 그릴래.”
    “오호, 딸기공주님은 공주 그리고. 자, 로리 넌?”
    “몰라요.”

    갑자기 그림을 그리라니, 여긴 학교도 아니잖아요. 미술시간도 아니고. 난 엄마가 그리고 싶은데, 엄마얼굴을 본지 너무 오래되서 생각이 잘 안났어요. 엄마의 긴 코를 그리려다가 막대기만 그렸죠. 식탁 내 자리에서 항상 있는 인디언 모양을 그리다가, 갑자기 짜증이 올라왔어요. 빨간색을 꺼내서 엑스표를 했어요.

    “로리, 그림이 마음에 안들어?”
    “몰라요.”
    “선생님 한번 보여줄래? 이야, 굉장히 멋지네. 로리, 이 막대기가 뭐니?”

    그림을 망쳐서 기분이 나쁜데, 닥터 로스는 계속 질문했어요.

    “혹시 이 막대기 너희 엄마 아니니?”
    “맞아요.”
    “여기 있는 두 줄은 뭐야?”
    “엄마 다리요.”
    “엄마 다리가 이렇게 꼬여있으면 걷기 힘들겠다.”
    “엄마는 다리가 안 좋아서 산책할 수 없어요.”
    “아니에요! 닥터 로스. 로리 어머니는 다리만 괜찮으시대요.”

    옆에서 지켜보시던 선생님이 끼어드셨어요.

    “미세스 브라운, 감사해요. 하지만, 전 지금 로리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로리, 니네 엄마 다리는 정말 많이 꼬여있구나.”
    “엄마는 다리가 다쳐 산책할 수 없다구요!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아, 아까 그랬지. 정말 미안하다. 대답했는데 또 물어봐서 미안해. 용서해줘. 그럼, 이 옆에 모양은 인디언 문양 같은데, 이건 뭐니?”

    말하기 싫었어요. 닥터 로스는 끈질기게 물어봤어요.

    “서부영화에 나오는건가?” / “아니요.”
    “그럼 아빠 라이터에 새겨 있는거?” / “아니에요.”
    “혹시 박물관 가서 본거니?” / “아니에요.”
    “여자애들은 이런거 안 좋아하는데. 혹시 니 남자 짝궁이 인디언 좋아하니?”

    닥터 로스, 멍청이.

    “아니에요. 이건 우리집 식탁에 새겨져 있는거에요!”
    “식탁위에?”
    “네, 엄마는 앞으로 식탁에서 우리랑 저녁을 먹지 않을거에요.”

    닥터 로스는 골똘이 생각하셨어요.

    “니네 엄마는 너희랑 산책할 수 없고, 너희랑 저녁을 드실 수 없다면. 내 생각에는 엄마가 낫지 않는다는 뜻 같은데. 엄마가 혹시 돌아가신다는거야?”
    “네!”

    닥터 로스, 그걸 이제야 알다니. 정말 의사 맞나요?

    “엄마가 돌아가시면, 무슨 일이 일어나지?”
    “엄마는 천국에 갈거에요.”
    “엄마가 천국에 가시면, 너에겐 어떤 일이 일어나니?”

    어려운 질문이에요.

    “몰라요.”

    닥터 로스는 나를 봤어요. 난 속상해서 눈물이 나려 했어요. 엄마가 정말 천국에 가면 나는 어떻게 되는거지? 이제 고모랑 살아야하는건가? 엄마는 영영 못 보는건가?

    “로리, 그리고 세리. 지금부터 선생님이 하는 말 잘 듣거라. 나는 천국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거야. 지금 중요한 것은 엄마한테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너희가 아는거야. 너의 엄마는 지금 혼수상태에 계셔. 이것은 고치와 같아. 고치는 죽은것처럼 보여.
    움직이지도 않고, 물어봐도 대답도 안하고, 너희를 안아줄 수도 없지. 하지만,너희들이 하는 이야기는 다 들으실 수 있단다.
    너희가 예쁜말을 하면 기뻐하신단다. 엄마가 기뻐하는 티는 못 내지만, 분명히 기뻐하셔. 너희들이 가면 반가워 하신단다. 반갑다는 표현은 안하지만, 반가워하셔.”
    “세리, 엄마 보고 싶어요. 엄마한테 내가 만든 종이접기 보여줄래요!”
    “그래, 세리. 엄마한테 보여드리면 엄마는 다 들으실거야. 이렇게 고치처럼 계시다가, 며칠 후에 엄마는 고치에서 나와 나비처럼 자유로워질거야. 훨훨 날아갈거야. 하지만, 너희들 하는 말은 다 들으실 수 있지.”
    “왜 엄마가 우리랑 안 살고 나비처럼 날아가야 하죠?”
    “그건 때가 됐기 때문이야. 사람이면 누구나 언젠가는 몸에서 벗어나 나비처럼 날아갈 때가 온단다. 너희 엄마에게 그 때가 온거야. 엄마가 나비가 되기전에 한번 만나러 가야지. 그동안 엄마 못 만나서 힘들었지?”
    “앙~ 엄마 보고 싶어.“

    세리가 울기 시작했어요.

    “이 울보, 또 운다. 그만 울어. 다 어른들이 못 만나게 했죠.어떻게 어른들을 믿어요? 고모는 내가 뭘 물어봐도 대답도 안해주고, 화만 내고. 아빠는 아침일찍 나가셔서 우리가 자면 오세요. 어른들을 우리마음 몰라요.”
    “내기 할래?”
    “내기요?”
    “그래. 내가 어른이잖아. 나는 다른 어른이랑 다르단다. 그래서, 니네 엄마가 어떠신지 다 이야기해줬잖아. 선생님이 병원에 이야기해서 엄마보게 해줄게.”
    “정말이요?”
    “그럼, 엄마 딸들인데 엄마 보러 가야지. 엄마가 어떤 음악 좋아하시니?”
    “존 덴버! ‘시골길, 내고향으로 보내줘요(Take me home, country roads)를 항상 불렀어요.“
    “그래, 그 곡이 있는 테이프를 줄게. 워크맨에 넣어가서 들려 드리렴.”
    “난 저번에 다친 손가락 보여줄래!”
    “그래, 세리는 손가락 보여드리고. 로리는 뭐할래?”
    “내일 미술시간에 엄마 얼굴을 그려서 보여드릴래요.”
    “또 엑스표 해서?”
    “아니요. 잘 그릴거에요.”
    “그래, 로리는 엄마얼굴그림. 선생님은 빨리 날을 잡아서 너희들이 엄마를 보도록 해야겠다. 내일부터 바빠지겠는걸.”

    닥터 로스는 마음을 고치는 의사라 하더니 정말 신기했어요.
    짜증도 안나고, 가슴이 설레였어요. 엄마랑 놀이공원 갈때처럼 신났어요.
    엄마, 우리 곧 만나요!


    ***



    닥터 로스는 생각보다 빨리 날짜를 잡아줬어요. 세리랑 나는 엄마가 사준 드레스를 옷장에서 꺼내 입었어요. 엄마가 예전에 가르쳐준대로 속바지도 챙겨입었어요. 드디어 엄마를 만나러 가요! 미세스 브라운 선생님이 우리를 병원까지 태워다 주셨어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빨간 숫자가 켜지자, 마음이 콩닥콩닥. 손에서 땀이 어찌나 나던지 쥐고 있던 스케치북이 미끄러져 나갈 것 같았어요. 병실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빠가 의자에 앉아계신게 보였어요. 그 옆에 흰 이불을 덮고 엄마가 누워계셨어요.

    “엄마!”

    나와 세리는 얼른 뛰어갔어요.

    “엄마! 엄마! 로리 왔어요.”
    “세리도 왔어요.”
    “엄마, 우리 말 들리시죠?”
    “언니, 닥터로스가 엄마가 우리 말 듣는다고 하셨잖아.”
    “나도 알아. 엄마! 그동안 보고 싶었어요. 여기 엄마 보여주려고 그림 그려왔어요.”
    “잉~ 나도 엄마한테 이야기할래!”

    고집쟁이 세리 기집애. 내가 먼저 말 시작했는데 끼여들다니.

    “로리야, 세리야. 오늘 니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게 해줄게. 싸우지 말고 한사람씩 이야기해. 엄마도 너희들이 싸우는거 안 좋아하시잖아.”

    맞다, 엄마는 우리가 싸우면 속상해하셨지. 항상 사이좋은 자매가 되라고 하셨는데.

    “세리, 니가 먼저 말해.”
    “언니, 정말?”

    세리는 엄마팔을 붙들고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엄마, 세리에요. 나 이빨 빠졌어요. 아~~ 엄마 보여요? 고모가 치과에 데리고 갔는데, 무서워서 혼났어요. 여기 손가락이 다쳤어요. 고모가 밴드를 감아줬어요. 미키가 그려진 밴드. 난 미니가 좋은데, 고모가 미니는 없대요. 그리고, 유치원에서 화분 길렀는데 집에 가지고 왔어요. 이~~~러케 자랐는데. 로리 언니가 화분 들고가면 안된다 해서 집에 두고 왔어요. 정말 길게 컸어요. 응. 그리고, 응....”
    “다했어?”
    “아니야! 엄마 나 바비 인형옷 갖고 싶어요. 빅토리아가 새로 핑크옷 샀는데, 레이스 달렸어요. 엄마, 꼭 사주세요.”

    세리는 뭐 사주세요, 언니가 때려요 (읔!), 등등 한참 이야기하더니 나한테 넘겨줬어요.

    “언니, 해!”
    “엄마, 세리가 너무 많이 해달라 그래서 힘들었죠? 난 그냥 엄마 보기만 하면 돼요. 엄마 얼굴이 많이 하얘졌네요. 닥터 로스가 엄마는 고치안에 있는거라 하셨어요. 답답하진 않으세요? 난 선생님이 한자리에서 가만 있으라 하면 되게 답답하던데. 엄마 보고 싶었어요. 고모가 잘해주시긴 하지만, 엄마 요리도 먹고 싶고,엄마가 따준 갈래머리도 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엄마를 다시 보니 좋네요.”

    나도 한참 엄마를 붙잡고 이야길 했어요. 옆에 있던 세리가 ‘나도 그래.’하며 계속 따라했어요. 아빠는 우리가 엄마랑 이야기하는걸 옆에서 지켜봤어요. 아빠는 이상하게 계속 눈물을 흘렸어요. 내가 엄마랑 다 이야기하자, 우리랑 이야기를 했어요. 엄마가 너무 아파 우리가 걱정할까봐 이야기를 못해줬다며 미안하다 하셨어요. 오랜만에 우리 가족이 다 모이니 참 좋았어요.

    다음 월요일, 이야기 나누기 시간이 돌아왔어요. 친구들은 이 시간에 지난 주말에 자기가 했던 특별한 일을 발표해요. 여행을 가면 기념품을 보여주기도 하고, 어떤 애는 일요일에 이빨 뽑았다며 보여주기도 했어요. 이번 시간은 내 차례였어요. 난 일요일날 엄마 병원간거밖에 딱히 떠오르는게 없었어요. 그래, 그걸 이야기하자. 칠판앞으로 가서 닥터 로스가 그려준대로 고치와 나비를 그렸어요.

    “어? 그게 뭐야?”
    “이렇게 추운데, 나비보러 갔어?”
    “아니야.”

    닥터로스가 이야기해준걸 떠올렸어요.

    “이건 우리 엄마에요. 엄마는 지금 고치처럼 생겼어요. 겉에서 보면 죽은것처럼 보여요. 꼼짝도 안해요. 엄마는 우릴 안아 줄수도 없고, 우리가 물으면 대답할 수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것은 다 들어요. 엄마는 곧 이 나비처럼 훨훨 날아갈거래요. 나비처럼 자기 맘대로 다닐거래요. 지난 일요일, 엄마가 날아가버리기 전에 병실에 가서 엄마를 보고 왔어요. 엄마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하고, 세리는 다친 손가락을 보여주고, 난 내가 그린 그림을 보여줬어요.”
    “며칠 후에 엄마가 날아가? 멀리?”
    “응, 닥터 로스가 그런다고 이야기해줬어.”
    “나도 우리 할머니가 그러셨는데. 한참 누워있다가 돌아가셨어.”
    “나도. 나 1학년 되고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며칠 결석했잖아.”
    “우리집 강아지도 천국에 갔대.”
    “근데, 니네 엄마는 왜 너희랑 안 살고 날아간대?”
    “그건 누구나 그럴때가 있대. 우리 엄마는 지금이 그럴때래.”
    “그렇구나.”
    “우리 엄마도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셨어. 어떤 사람은 일찍 돌아가신대.”
    “정말?”
    “응. 엄마가 초등학생일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대. 엄마가 나 가방사주면서 할머니가 가방 사주던거 생각난다 하셨어.”

    친구들은 모두가 겪은 일들을 이야기해줬어요. 모두 비슷한 일들이 있었네.


    ***


    엄마가 나비가 되셨어요. 아빠는 엄마가 나비처럼 날아서 천국에 갔다고 하셨어요. 우린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어요. 세리는 인형을, 나는 목걸이를 엄마에게 선물했어요. 세리는 엄마가 천국에서 재밌게 놀았으면 좋겠대요. 나는 엄마가 나 보고 싶을 때, 내사진이 들어있는 목걸이를 보면서 나를 생각했으면 좋겠어요.목사님은 기도를 열심히 하면 천국에 있는 엄마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셨어요. 우리랑 같이 기도해주셨어요. 엄마에게 항상 세리와 나를 지켜봐달라고 부탁했어요. 부탁 안해도 엄마는 보실거에요. 마지막으로 묘지에 가던 날, 아빠는 많이 우셨어요. 아무도 아빠를 말리지 않았어요. 나도 눈물이 많이 났어요. 아빠가 나를 안고 펑펑 우셨어요. 세리도 울었어요. 아빠가 등을 들썩이는게 느껴졌어요. 한참 셋이서 울고 나서, 아빠는 우리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어요.

    “우린 가족이니까 서로 돕고 사는거야. 알았지?”

    학교에 가니, 내 책상위에 편지가 수북히 쌓여 있었어요. 모두 반 친구들이 보내준거에요. 꽃을 접어 부치고, 색연필로 글을 썼어요.

    ‘로리에게, 너희 엄마가 돌아가셔서 나도 슬퍼. 하지만, 니 말대로 몸만 벗어나신걸꺼야. 그럴때가 온걸꺼야. 힘내!’
    ‘로리에게, 너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 엄마에게 물어봤어. 너한테 잘해주래. 그리고, 넌 씩씩한 아이래.’
    ‘로리, 니가 안 오니까 교실이 텅 빈 것 같았어. 나도 슬펐어. 다시 돌아오니 참 좋다. 우리 재밌게 놀자.’
    ‘로리, 안녕!’

    이렇게 짧게 쓴건 개구쟁이 존 거네. 이건 스테파니거구. 외할머니 이야기를 해준 앤도 있고. 친구들 편지를 읽으니 눈물이 났어요. 모두 나를 생각하는구나.

    닥터 로스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선생님께 여쭤보니, 편지를 써보라고 하셨어요. 편지도 쓰고, 다른것도 드리고 싶었어요. 아빠한테 이야기하니 크고 노란 봉투를 주셨어요. 여기다 니가 주고 싶은걸 담아보라고. 무엇을 줄까 한참 고민했어요. 닥터 로스는 내가 좋아하는 장난감도 필요없으실테지. 크레용도 있으시고.그러다가, 상자에 넣어둔 친구들 편지가 생각났어요. 이걸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힘이 나요. 그래, 이걸 보내드리자. 봉투에 가득 친구들 편지를 담았어요. 내가 쓴 편지도 넣구요. 오늘 아침 아빠한테 드렸어요. 아빠는 우체국에 가서 부쳐주시겠다 약속하셨어요. 닥터 로스가 좋아하시겠죠? 그때 다음에 또 놀러오라 하셨는데, 언제 놀러오라는 답장이 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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