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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여행 - 귤꽃향기로 덮힌 5월의 서귀포
    버킷리스트 실행보고 2013. 5. 18. 22:11

    "여행은 2번째가 진짜에요."

    몇년전,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중국여행을 할때, 옆자리에 앉아 계시던 분이 말씀해주셨다.

    "첫번째 여행은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다녀요. 그런데, 두번째로 가면 어디가 좋은지 나쁜지 아니까 좋은곳을 즐길수 있지요."

    그래서, 나는 서귀포를 세번째로 가기로 했다. 첫번째는 11월, 두번째는 1월. 그리고, 지금은 꽃피는 5월이다.

    5월은 나에게 일하는 계절이었다. 내가 마음을 안 낸것도 있었고, 직장에서 가족의 달 5월에 행사가 많이 있었다. 5월에 여행을 떠난다는건 나에게는 꿈과 같았다. 금과 같은 5월. 여행을 떠나자. 어디로? 티비와 월급봉투에 지친 당신을 부르는 제주도로.

     

    1. 초록의 향연 - 비자림

     산딸나무와 단풍나무 밑에서 찍은 풍경. 잎사귀들과 햇빛만으로도 아름답다.

     

    언제부턴가 화려한 꽃보다는 변치 않는 초록이 좋아졌다. 제주도에 여러 휴양림과 식물원이 있다. 그중 고른곳은 천년이 된 비자나무가 있다는 비자림. 비자나무 숲. 내 성 수풀 임(林)자 처럼 나무와 나무들이 있는 곳. 비자림 초입에서 만나 관리인 선생님은 내가 들고 있는 쥬스병을 잠시 맡아 주시겠다고 한다. 천년동안 비자나무는 쥬스를 맛본적이 없기 때문에, 쥬스를 쏟기라도 하면 나무가 병들수 있다고. 동행했던  엄마는 관리인 선생님의 자연보호 마음이 아름답다며 숲을 걸으며 쓰레기를 주으셨다.

    천년동안 자라 양옆으로 가지를 뻗은 늠름한 비자나무

     

    비자림에는 비자나무의 알싸한 냄새와 더불어 새소리가 난다. 정말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양 새는 마음껏 지저귄다. 옥타브를 넘나들고, 엇박과 정박을 오가고. 비자림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나무와 새의 것 같다. 우리는 잠시 이곳을 빌려 들어온듯,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나무 내음과 새소리를 한참 맡고 듣고 왔다. 엄마는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우리도 자연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내 생명도 자연이니 내가 아는 가장 기본적인 자연은 내 자신이며, 나를 보호하고 보살피는게 자연보호라고. 비자림의 천년을 사는 비자나무와 목청껏 자신의 목소리를 뽐내는 새들처럼 나도 나를 아끼며 살고 싶어졌다.

     

     

    2. 건축학 개론의 그 집 - 서연의 집

    바닷가에 있는 카페를 가는게 우리들의 두번째 계획. 처음에는 이주일씨 별장이 있는 투윅스에 갔다. 첫날 피곤을 일찍 느껴 숙소에 가려고 전화를 하니 마침 계단에 칠을 했다고 한시간만 더 있다 오란다. 스마트폰으로 근처 포구를 검색하니 위미항. 그 근처에 건축학 개론의 그 집이 카페가 되었다고 한다.

    위미항이다. 태풍으로 인한 피해로 어수선한 풍경을 자르고 찍은 사진.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서연이 건축을 의뢰하던 그 집. 사실 이 집은 영화를 찍으려 어설프게 만들었다가 많은 사람들이 찾자, 개조를 한듯 하다. 영화랑 조금 달라졌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다. 이 집에서 첫사랑을 그리던 그 영화의 느낌을 잡고 있겠지.

    이 카페 주변은 지난번에 온 태풍 볼레로의 피해로 공사중이었다. 레미콘과 관광객들의 차로 어수선한 풍경이었다. 영화에서 나오던 거실에서 창을 열면 바라다보이는 그림같은 풍경에 사실은 전깃줄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것이 프레임안에 장면을 넣는 영화구나. 라는걸 알았다. 사실 내가 찍은 사진도 주변에 어수선한거 프레임 아웃 시키고 찍는거니까.

    카페에 진입하기전 정다운 골목길도 있었다. 영화에서 서연과 승민이 거닐던 골목길. 생일이니 성게미역국을 사주겠다던 그 길. 그 장면이 생각났다. 참 찰나의 순간을 이렇게 담아내는게 영화구나.

     

     

    3. 서귀포의 유토피아의 길

    60대 중반의 엄마를 모시고 올레길을 얼마나 걸을 수 있을지 조금 염려되었다. 걱정은 금물. 올레길을 걷기 위해 며칠전부터 준비했다던 엄마. 모든 길을 걷지 않고 예전 여행에서 기억에 남던 부분을 찾아서 그 부분은 걸어봤다. 제주올레 6코스 이중섭 미술관 - 천지연 폭포길. 이중섭 미술관에 주차를 하고 서귀포항을 거쳐 걸어갔다. 처음 왔을때 너무 비가 많이 와 길을 잃었지. 이번에는 하늘이 도왔는지 노란 옷을 입은 할머니가 길을 친절하게 안내해주셨다. 서귀포항을 나오면 2012년 새로 길을 정비해서 유토피아의 길이 새로 생겨 있었다. 각종 나무들이 울창하고 꽃들이 간간히 피어있고, 예술작품들도 전시되어 있는곳. 엄마는 여기를 걸으며 환히롭다고 하셨다.

     

     

     

     

     

    1시간 걷고 다시 돌아왔다. 신기한것은 돌아오는 길이 다르게 보인다는것. 이렇게 볼때랑 저렇게 볼때랑 다르구나. 그리고, 돌아올때는 시간이 더 짧게 느껴진다는것. 앞에 무엇이 나올지 알때랑 모를때랑 느끼는 긴장감이 달라서 돌아올때가 더 편안하고 짧게 느껴지는것 같다.

     

    4. 이중섭 미술관 - 아고리와 남덕군의 사랑

    예전에 올레 6코스를 걸을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것이 이중섭 미술관이었다. 이중섭은 이북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유학을 했던 부잣집 아들이자 천재화가이다. 6.25가 난후 서귀포에 피난 와 1년동안 살았는데, 그때 거주했던 집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것을 테마로 이중섭 미술관을 만들었다.

    이중섭 미술관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것은 이중섭과 그의 부인 이 남덕의 편지이다. 둘은 6.25 전쟁후 한국와 일본에서 떨어져 지냈는데, 그때의 그리움이 절절히 편지에 녹아 있다. 이 남덕님은 일본인 여인으로 이 중섭이 남덕(南德)이라는 이름을 직접 지어주었다 한다. 이 날 운이 좋게도 미술관 관장님께서 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고리는 이 중섭이 일본에 유학갈을때 교수님이 붙어주신 별명이란다. 당시 이씨 성을 가진 한국인 학생이 3명이라 이들을 구분하기 위해 별명을 붙여줬는데 이 중섭은 턱이 길어 일본어로 턱을 뜻하는 말을 변형 시킨 아고리라 불리웠다 한다. 2012년 이중섭님 부인이 평생 간직해온 그분의 파레트를 기증하기 위해 미술관을 찾았는데, 그때도 아고리라고 남편을 불렀다고 한다. 이중섭은 그의 편지에서 부인을 남덕군이라 불렀다. 보통 "군"은 남자를 부를때 쓰는 말인데, 특별함을 더하고자 부인을 그리 불렀다고 한다. 또는 아스파라거스군 이라고도 불렀는데, 당시 나온 통조림이 아스파라거스가 있었고, 이 안의 내용물이 부인의 발가락과 닮았다고 한다. 둘은 연애시절 이 중섭이 구두때문에 발이 아팠던 부인의 발가락을 치료해주며 친해졌다고 하는데, 일본인이 신체의 일부를 남에게 보여주는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라고 한다. 전쟁으로 어수선한 1950년대에 순수처럼 간직한 그들을 사랑이 참 고결했다.

     

    이중섭 거리와 이중섭 거주지. 이 중섭 거주지는 너무 작아 이곳에 4명이 기거했다는게 마음 아프다.

     

    이중섭 편지 중 기억에 남는 대목. 정확한 문구는 기억이 남지 않지만 이런 뜻이 담겨 있었다.

    "세상사람이 뭐라하건, 예술가는 마음을 거울처럼 맑게 만들어 아름다움을 담아야 하오. 세상이 뭐라하건 나는 남덕군에 대한 사랑을 마음에 담고 있겠소."

    아름다움을 그리는 화가는 마음까지도 아름답게 관리해야 한다는 그의 의지를 배울 수 있었다.  

     

     

    5. 올레 7코스 외돌개를 넘어

     

    서귀포와는 달리 외돌개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외돌개를 시작으로 걷다 중간에 60 beans 라는 커피하우스를 만났다. 예전에 모짜르트는 60개의 커피알을 세어 커피를 마셨다고 하지.

     

    7코스 중간 지점인 서귀포여고 근처에서 쑥갓꽃을 봤다. 농사 전문가 엄마가 가르쳐주셨다. 제주에는 꽃과 화분이 잘 되어서 종종 쑥갓꽃을 키우는 집들을 볼수 있었다.

     

    서귀포에서 묵는 내내 달콤한 냄새가 났다. 아카시아 냄새 같기도 했다. 하얀 아카시아 나무가 있는지 두리번 거렸다. 나중에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가 보니 귤꽃 향기였다. 예전에 캘리포니아에 오렌지 꽃이 필때면 그 향기가 매력적이라는 글을 본적이 있었다. 나는 그 글을 보고 오렌지 꽃향기를 동경해왔다. 하지만, 미국까지 갈것도 없이 오렌지 말고 귤이 이런 향기가 있다는걸 난생 처음 알았다.

    11월 서귀포는 오렌지색 등불처럼 가가호호 귤이 매달려 있었다.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고 귤나무 하나씩은 꼭 있었다. 5월 서귀포는 귤꽃이 있었다. 더불어 그 꽃에 이끌려 온건지 새소리도 만연했다. 사진에 찍히지 않는 귤꽃향기와 새소리. 눈을 감고 느끼는 그 향기와 소리가 여행의 새로운 묘미를 주었다.

     

     

    6. 두툼한 흑돼지

    이렇게 제주를 오감으로 즐기고 떠나는 날. 제주 특산품을 사며 맛집을 물어봤다. 제주시 이마트 옆에 있는 삼대국수회관(노형점)을 추천해주었다. 스마트폰에 맛들여 그 전날 맛집 검색으로 몇군데를 갔는데, 모두 생각만큼 좋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에게 물어간 삼대국수의 고기는 일품이었다. 두툼한 돼지고기의 질감이 느껴지는 물만두와 인심좋게 두껍께 썰은 돼지고기 수육이 얹히 비빔국수를 정말 맛나게 먹고 왔다.

     

     

    버킷리스트로 여행을 많이 다니기로 꼽은 이유는 발상의 전환과 시야를 넓히고 싶어서다. 나에게 여행은 오래가는 추억거리이고, 일상에서 얻지 못하는 생각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엄마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중간에 툭탁거리고 싸우면서 내가 이 나이에도 엄마에게 바라는게 많다는걸 알고 반성도 했지만, 그동안 몰랐던 외갓집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마도 여행을 가면 마음이 열려서 그런듯 하다. 그러니, 일상에서 뭔가 쳇바퀴 돌듯 제자리를 맴돈다면 또 다시 여행을 가겠다. 다른 풍경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하고, 좀더 세상에 마음을 열기 위해서. 5월의 서귀포를 보며 눈이 아닌 내음과 소리를 즐기는 풍경이 있다는것을 배우는 것처럼 말이다. 평생 아는것보다 모르는것이 많기에 더 많은 것을 발견하고 알고 싶어서 또 다른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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