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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홀로 미국여행기 - (6) 애틀란타의 pride를 만들어준 마가렛 미첼
    카테고리 없음 2014. 11. 30. 19:05

    처음 Cindy선생님이 애틀란타 출신이라고 하셨을때 먼저 생각났던것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어릴적 TV에서 수없이 해주던 명작이었고, 20대때는 책으로도 읽었었다. 남북전쟁이 일어나던 당시의 상황과, 드레스 문화, 스카렛 오하라의 독립적인 성격, 레트 버틀러의 능글거림 등 수년이 지나도  인상깊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꼭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작가 마가렛 미첼 하우스에 가보고 싶었다.

     

     

     

    마가렛 미첼 하우스는 그녀가 살던 아파트였다.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썼던 곳인데, 이후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 후 이 집에서 이사갔다고 한다.

     

     

     

    1층에선 입장권과 기념품을 팔았다.

    입장권을 사면 예쁜 아가씨 가이드가 설명을 해준다.

    마가렛 미첼은 애틀란타가 고향이고, 아버지는 변호사였다고 한다.

    대학공부를 하러 고향을 떠나 있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애틀란타에 돌아와 살 결심을 한다.

    그녀는 신문기자로 일하다가, 1번의 결혼 실패 후 재혼해서 안정을 찾고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내가 알아들은것. 신디 선생님이 다 설명 이해하냐고 해서 알아들은것 몇가지만 이야기 했더니,

    가이드 아가씨가 가끔 남부 사투리를 썼다고 말씀해주셨다.

    이게 남부 사투리인지 표준말인지 그런 구분은 전혀 안된다. 난 단어 몇가지를 낚시했을 뿐.

     

     

    2층에는 그녀의 아파트가 있었다.

    당시의 상황을 복원해놨는데, 생각보다 아담했다. 특히, 부엌이 작고 침실이 컸다.

    그래도 그때가 1920-30년대였다. 그때 이런 아파트가 있었다는것 자체가 대단하다. 우리나라는 초가집뿐이었던 시대인데 말이다.

     

     

     

    가족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마도 복장으로 봐서는 왼쪽에 있는 사람이 그녀의 아버지이지 않을까?

    관람객들이 목까지 올라온 옷을 보고 불편해보인다고 했다.

     

     

     

    작지만, 오븐도 있고 개수대도 있는 마가렛의 부엌

     

    그녀의 tea set

     

     

    3층으로 올라가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영화화 된후,

    주연배우들이 애틀란타를 방문했던 당시의 자료들이 있었다.

     

     

    "레트 버틀러가 Five Points에 오다."

    Five Points는 어제 갔던 조지아주립대와 CNN센터 등이 있던 애틀란타 중심가라고 한다.

    그런데, 이 신문기사는 1939년에 발행되어 있다.

    1939년에는 우리나라는 식민지시대였고, 우리 할머니는 가난해서 아무일이나 안 가리고 하셨다던데..ㅠㅠ

    이 당시 미국은 영화의 전성기라고 할 정도로 문화가 이미 융성해 있었다.

    문화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꽃필수 있다고 생각했을때, 미국 사람들이 왜 이렇게 여유있는지 알것 같았다.

     

     

     

     

    클락 케이블과 미첼여사.

    이렇게 서 계시니 미첼여사가 우리나라 김수현 작가 같다.

     

     

     

     

    영화 주인공들 초상화도 여기저기 붙여 있었다.

     

    한편엔 별관도 있었는데, 그곳엔 초상화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대한 다큐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가렛 미첼 여사는 그 후 또다른 소설은 집필하지 않았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수익금으로 흑인들을 위한 기부도 하고 살다가

    어느날 남편과 길을 건너다 차에 치여 돌아가셨다고 한다.

    클라크 케이블과 비비안리도 1960년대에 유명을 달리했다.

    이렇게 역사속에 인물들을 잊혀져 갔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애틀란타의 pride가 되었다고 한다.

    한 소설이 한 도시를 특별하게 만들고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다.

    예술의 힘은 대단하다고 느꼈다.

     

     

    가이드가 설명을 시작하기전, "저는 질문을 무척 좋아해요. 그러니, 질문이 있으면 설명 끝나고 하셔도 되요."

    라는 말로 시작했다. 한 섹션을 설명하고 다음 섹션을 넘어가기전에 "여기까지 질문있나요?" 라고 묻곤 했다.

    그럼, 관람객들은 "그녀의 아버지가 소설을 좋아했나요?", "벽에 걸린 그림은 누가 그렸나요?" 등 여러가지 질문을 했는데,

    나는 말이 잘 안나오더라.

     

    어제 갔던 애틀란타 시내에서도 가이드 해주셨던 찰리 선생님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붙이고,

    마가렛 미첼 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도 다큐를 보며 이 다큐 TV에서 몇년전에 해줘서 봤었어요..등

    서로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었다. 대화하고, 토론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발표하고..

    이런 문화가 어딜 가나 자연스러웠다. 이런게 의사표현과 자기주장이 평등하게 자유로운 미국의 분위기 같았다.

     

     

     

     

    유모역할을 맡았던 헤이티 맥대니엘과 그녀에게 보낸 마가렛 미첼여사 편지도 있었다.

    헤이티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상을 탄 첫 흑인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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