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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는데 없다고 할 수 없다]#05 한의원에 간 화섭씨
    있는데 없다고 할 수 없다 2018. 8. 18. 11:04


    김우진(Kim Woo Jin)

    투명한 글라스와 체리 / 캔버스에 아크릴 / 45X53 / 2011.12


    며칠전부터 화섭씨의 발이 부었다. 절룩거리며 걷는다. 한의원 치료후 경과가 좋아 계속 다니기로 했다. 토요일 오전에는 내가 동행했다.


    동네에 새로 생긴 한의원은 시설이 좋다. 대기실 한켠에 안마의자가 있다. 화섭씨는 들어가자마자 안마의자에 앉는다. 간호사가 "9시부터 진료에요"라고 말하길래 "미리 와서 기다리려고요."라고 내가 대답했다. 안마의자에 덜컥 눕는 화섭씨를 보고 간호사는 친절히 전원을 넣어준다.


    자폐장애를 가진 친구들은 시야가 좁다.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보인다. 같이 버스를 타도 빈자리로 돌격전진하는 화섭씨다. 궁금한게 있으면 주변상황은 고려안하고 불쑥 질문도 한다. 특정한것만 보이니 당연히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잘 알아채지 못한다. 또한, 스케쥴이 바뀌면 힘들어한다. 유연성있게 몇번을 설명해주고, 본인에게 유리한걸 걸고 협상해야  바꿔준다.


    오늘의 스케쥴은 한의원 끝나고, 집에서 조금 기다린 뒤 엄마랑 볼일보러 외출하는거였다. 그런데, 그 스케쥴을 엄마가 바쁜지 미리 이야기를 안하신거다. 안마의자 서비스가 끝난후, 이걸 이야기하니 화섭씨는 얼굴을 찌뿌린다. 자기는 한의원 끝나고 바로 좋아하는 서점으로 가려고 생각했던거다. 구체적으로 집에 돌아가 몇시까지 몇분을 기다린 후, 엄마랑 외출할거라고 기다림의 분량을 알려주니 합의가 된다. 이런 습관때문에 화섭이와 무엇을 하려면 미리 스케쥴을 알려주는게 좋다. 보통 자유시간을 본인이 좋아하는 곳에 가는걸로 쓰는터라 그 자유시간이 변하는것을 미리 알려줘야 납득을 한다.


    30분전에 간터라 믹스커피도 한잔 했다. 다 먹은 컵 처리는 물건을 배열한 규칙에 맞게 잘한다. 정확히 9시가 되자 치료실에 가서 치료받는 포즈로 눕는다. 주섬주섬 양말은 벗어 나에게 준다. 몇시에 무슨 행동을 하는지 학습하면 잘 지킨다. 


    1시간정도 치료가 끝난후 기분이 좋아져 치료실을 나온 화섭씨. 대기실 옆에 안마의자를 흘끗 보더니 할아버지가 누워계신걸 발견한다. 큰소리로 "아효, 안마의자에 할아버지가 계시네."라고 이야기한다. 대기실 사람들은 눈길한번 주지 않는다. 누워계신 할아버지도 꿈쩍도 안하신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상황이 난 부끄러웠다. 자폐장애를 가진 친구들은 가끔 눈에 띄는 행동을 한다. 어릴땐 위신과 체면, 왠지 민폐를 끼치는것 같아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요즘에 공부하는건 self-love이다. self-love는 우리가 사회화 과정을 겪으면서 배운 기준들이 우리를 가둬놓고 유연하게 사는걸 막는다는걸 인식하는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이 필요없다면 과감히 버릴수도 있다는것이다. 나를 부끄럽게 하는 기준은 "체면을 차려야한다, 다 큰 사람이 특이한 말을 하는건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기준이었다. 이제는 내가 먼저 그럴수도 있다고 받아들인다. 


    "안마의자에 앉고 싶었는데 아쉬웠어?"


    이렇게 물어보니 "아효..할아버지가 앉아계시네."라고 반복해서 말하던걸 멈추고, "어"하는 화섭씨.


    "아까 안마의자 했잖아. 양보해야지. 다음에 또 한의원 올때 다시해."


    양말을 다시 신고 화섭씨는 수긍을 한다. 


    평생 스케쥴과 상황이 바뀔때마다 화섭씨랑 협상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나의 인내심은 늘어날테지. 사회가 어떻게 보건, 화섭씨의 개성을 받아들이는 나의 뻔뻔함도 늘어나겠지. 이제 화섭씨가 바뀌기보다 내가 성장하길 기대한다.


    * 김지선님의 도움으로 김우진 작가의 그림과 함께 글을 올리게 되어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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